서울올림픽 성화 최종 주자 임춘애 "그때로 돌아가고 싶네요"

뉴미디어국 뉴스편집부 기사입력 2018-09-17 21:45:33
서울올림픽 성화 최종 주자 임춘애 "그때로 돌아가고 싶네요"
"임춘애 선수 맞죠."

곳곳에서 임춘애(58) 코치를 불렀다.

1988년 서울올림픽 관계자들도, 자원봉사자로 참가한 사람도 임춘애 코치와 사진을 찍고 싶어 했다.

임춘애 코치는 "평소에는 못 알아보세요. 이런 자리에서나 알아보시죠"라고 웃으면서 친절하게 사진 요청에 응했다.

송파구에서 아이들에게 육상을 가르치는 임춘애 코치는 17일 서울시 송파구 올림픽공원에서 열린 1988년 서울올림픽 '영광의 벽' 제막식에 참석했다.

행사 전후로 임춘애 코치를 알아본 사람들이 "임춘애 선수, 예전 그대로예요"라고 외쳤다.

밝은 미소로 답한 임춘애 코치는 "저도 30년 전으로 돌아가고 싶네요"라고 웃었다.

임춘애 코치는 1980년대 중후반 최고의 육상 스타였다. 그는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에서 여자 800m, 1,500m, 3,000m를 석권했다.

당시 "라면만 먹고 뛰었다"라는 잘못된 인터뷰 기사가 나와 '라면 소녀'로 불리기도 했다.

임춘애 코치는 "이제는 웃고 넘기는 얘기"라고 했다.

서울올림픽 개회식에서도 임춘애 코치는 '주연'이었다.

1988년 서울올림픽 개회식이 열린 9월 17일, 임춘애 코치는 손기정 옹으로부터 성화를 받아들고 잠실 주 경기장을 돌았다.

그리고 '불'을 마라토너 김원탁 등 세 명에게 넘겼다. 영광스러운 '성화 최종 주자'가 임춘애 코치였다.

임 코치는 "이제 많이 아시는 것처럼, 개회식 하루 전 내가 최종 주자라는 얘길 들었다. 정말 영광스러운 일"이라며 "그 덕에 30년이 지난 지금도 이런 자리에서 나를 알아보신다"라고 말했다.

아시안게임 3관왕이었던 임춘애 코치는 서울올림픽에서는 모두 예선 탈락했다.

'결과' 때문에 "훈련을 게을리했다"는 눈총도 받았다.

지금 생각해도 이런 비판은 억울하다.

임춘애 코치는 "그땐 지금보다 아시아와 세계 육상의 격차가 더 컸다. 기록 차이는 어쩔 수 없었다"고 떠올렸다.

사실 몸 상태도 완전하지 않았다.

임춘애 코치는 1986년 아시안게임이 열릴 때 고교 2학년이었다.

아시안게임에 모든 걸 걸었고, 그 대회가 끝난 뒤 끊임없는 부상에 시달렸다.

그는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여자 100m 허들 정혜림 선수가 서른한 살에 금메달을 따지 않았나. 정말 부러웠다. 나는 대학교 3학년 때도 `베테랑`이라고 불렸고, 그때 부상을 떨쳐내지 못하고 은퇴했다"고 했다.

30대까지 선수 생활을 이어가는 후배가 부럽지만, 후회는 하지 않는다.

"정말 열심히 훈련했고, 1986년 아시안게임에 모든 것을 걸었습니다. 후회하지 않습니다."

임춘애 코치는 '헝그리 정신'의 대명사였다. 몇몇 체육 원로들은 젊은 선수들을 향해 "헝그리 정신이 부족하다"고 꼬집기도 한다.

임춘애 코치는 "기록에 대한 헝그리 정신은 있었으면 좋겠다. 나도 선수 생활을 돌아보면 기록에 갈증을 느꼈던 그때가 가장 많이 떠오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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